브랜드가 아닌 소비만 남았을 때 생기는 일

이은영

by. 이은영

25. 08. 18



한때 한국 콘텐츠 산업의 자부심으로 불리던 웹툰 산업이 조용한 조정기를 맞고 있습니다.


'웹툰 1조 원 시대, 글로벌 IP 확장'이라는 슬로건 아래 그동안 질주해 왔던 웹툰 산업이 최근 냉정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건데요. 실제로 창작 작품 수는 줄고 있고, 몇몇 플랫폼들은 조용히 퇴장했으며, 사용자 수조차 흔들리는 모습입니다.


이러한 시장의 변화는 산업의 성장성 둔화를 의미하기보다는 현재 웹툰 시장의 'IP 중심의 브랜딩'과 '창작자 생태계' 모두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어요.


2024년 기준, 국내 웹툰 시장의 규모는 약 1.83조 원으로 추정되며 네이버웹툰, 카카오웹툰은 북미와 일본을 포함한 글로벌 MAU 1억 명 시대를 선언하기도 했었죠. 이러한 수치는 표면적인 숫자로 상징성을 갖지만, 최근 변화가 심상치 않습니다.


미국 LA 애니메이션 엑스포에도 참여한 네이버 웹툰 (사진: 네이버 웹툰 보도자료)


실제 작년에 국내에 등록된 웹툰 신작 수는 전년 대비 14.6% 감소했는데요. 2023년 1만 7245편에서 1만 4923편으로 줄어든 것이죠. 새로운 작품 수가 줄었다는 건 공급되는 플랫폼에 영향을 미쳤음을 의미합니다. 피너툰이라든지 배민의 만화경 같은 서비스들도 종료되었죠.



비슷비슷한 콘텐츠들

사실 콘텐츠 수가 줄어든 것 못지않게 문제는 콘텐츠 다양성이 악화되고 있다는 겁니다. 이전에도 이러한 현상이 화두가 된 적이 있는데, 최근 들어 그 경향성이 더 심해진 것 같아요.


아무래도 플랫폼의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수요가 검증된 작품을 선보여야 이익이 되기 때문에 판타지 회귀물, BL, 로맨스 장르에 집중하고 있고요. 18세 이상 콘텐츠 비중도 전체의 57.7%에 달하면서 다양성을 잃고 있습니다.


성인물과 관련하여 네이버웹툰에 신작이 올라와서 생각 없이 보다가 18세 이상 콘텐츠여서 흠칫 놀란 적이 있습니다. '아니 네이버에서 이런 장르를?' 하면서 말이죠. 그만큼 돈이 되는 콘텐츠를 많이 수급하겠다는 의미로 보이는데요.


예전에는 플랫폼별로 장르가 뚜렷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레진코믹스, 탑툰, 짬툰, 미스터블루 등 시장점유율은 낮지만 '우리는 이러한 방향으로 갈 거야'라는 플랫폼들이죠. 그런데 이제는 네이버-카카오 양강 체제가 굳어지면서 해당 장르를 완전히 흡수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플랫폼은 수요가 있는 장르를 더 선호하게 되고 작품은 죄다 '회빙환'으로 귀결되는 모습이에요.

※ 회빙환: 회귀, 빙의, 환생


주인공이 죽고 회귀하거나, 다른 세계의 주인공에 빙의하거나, 환생하면서 스토리를 이어나가는 것인데요. <나 혼자만 레벨업>이나 <재벌집 막내아들> 등 대표적인 성공 작품들 중 회빙환이 많아서 무분별하게 비슷한 콘텐츠가 나오기도 합니다.


재벌집 막내아들 왼쪽-소설, 오른쪽-웹툰 (사진: 네이버웹툰 보도자료)


웹툰을 즐겨보는 편임에도 최근에는 이런 회빙환에 지쳐서 오히려 동물이 나오거나, 소소한 일상 관련한 콘텐츠를 찾아보게 되더라고요. 피로감이 높아진 상황입니다.



해외에서도 시작된 균열

K-웹툰의 글로벌 확장 전략도 긍정적으로만 보이지는 않습니다. 숫자상으로 무언가 삐걱대고 있거든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25년 1분기 콘텐츠 산업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웹툰의 수출액은 전분기 대비 26.7% 감소했고, 애니메이션 수출액은 73.1%나 줄었습니다.


그리고 네이버웹툰의 북미 법인 '웹툰 엔터테인먼트'의 경우 25년 1분기 실적에서 MAU가 10.5% 감소했고, 2200만 달러의 순손실이 났죠.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역시 매출액이 16% 줄면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와 관련해 한국콘텐츠진흥원은 <나 혼자만 레벨업> 이후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슈퍼 IP가 나오지 않았으며, 지속적인 웹툰 산업의 성장을 위해서는 슈퍼 IP 콘텐츠 발굴이 중요하다고 말했죠.


사진: 카카오 엔터테인먼트 보도자료


사실 <나 혼자만 레벨업>의 경우 전무후무한 기록을 가진 웹툰입니다. 수차례 정주행했던 작품이기도 한데요. 글로벌 누적 조회수가 142억 회, 열람자는 1억 7500만 명이며 일본에서도 '카카오픽코마'를 통해 일일 최대 열람자 수 82만 명이라는 역대급 기록을 세웠어요.


그러나 최근에는 안정적으로 수요가 있는 비슷한 콘텐츠들이 나오기도 하고, 웹소설로 검증된 작품을 웹툰화하는 경향도 보이면서 사람들의 피로감이 누적되고 있습니다. 유료화 정책, 이용자 경험의 불편함 역시 팬덤의 이탈로 이어지고 있죠. 이러한 모습을 보면 웹툰 시장이 성숙기로 들어가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하게 돼요.



웹툰 시장의 구조적인 문제 3가지

현재 웹툰 시장의 위기는 3가지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되는데요.


① IP 중심 마케팅의 한계

기존에는 IP 중심의 확장 전략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원천 IP를 발굴하고 해당 IP 하나로 웹소설, 웹툰, 드라마, 영화, 굿즈, 게임 등으로 확장하던 구조였는데요. 이 자체가 창작자의 공급 감소, MAU 하락 등으로 인해 지속성을 확보하기 어려워진 거죠.


② 브랜드 로열티 약화

사용자들은 플랫폼에 대한 팬덤을 가지기보다는 '툰별 소비'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이러한 방식은 신규 유입이 줄거나, 작품 편수가 줄어들 경우 플랫폼 전체 가치가 하락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즉 '브랜드에 충성하는 유저'가 아니라 '작품만 보고 떠나는 소비자'가 많은 거죠.


③ 기술 과잉 의존

마지막으로 AI 추천 알고리즘, UI 개선, 스마트뷰 등 기술 편의성이 업계의 핵심 무기였지만 이제는 유사한 기술이 널리 퍼지며 차별성이 줄어들었습니다. 추천의 경우 유사한 콘텐츠 추천-소비로 인해 해당 구조 안에 갇혀 있다가 그냥 이탈해버리는 사용자만 낳고 있죠. 팬-작가와의 커뮤니티, 유기적인 구조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요.


예전에는 인기 있는 작품의 댓글에 작가-팬들이 서로 소통하거나, 작품 속 주인공을 응원하는 등 상호작용이 많이 보였습니다. 그로 인해 팬덤도 생기고, 굿즈도 제작되는 등 자연스럽게 팬으로 이어지는 커머스 구조가 나왔고요. 하지만 지금은 소비하고 이탈하고, 요일별 콘텐츠를 체크하고 나가는 도구가 된 느낌입니다.



마케터의 시선

전반적인 웹툰 시장의 위기는 오히려 전환의 기회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리브랜딩의 기회를 찾기 위해 플랫폼들은 스스로에게 이러한 질문을 해보면 좋겠어요.


"하나의 웹툰 IP가 아니라 웹툰 플랫폼 브랜드는 어떠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가?"

"작가와 팬이 참여하는 경험 중심의 커뮤니케이션이 존재하는가?"

"소비자가 머무를 이유를 UI/UX의 개선이 아닌 감정적인 연결로 설계하고 있는가?"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다 보면 현재 웹툰 사용자가 숏폼 콘텐츠에 이탈되고 있는지도 점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숏폼 콘텐츠로 이탈하는 부분은 플랫폼 자체의 문제는 아니지만요. 결국 하루에 소비자에게 주어진 2시간 20분 정도의 스마트폰 사용 시간에서 얼마나 웹툰 플랫폼이 이 시간을 뺏어올 수 있을지가 관건입니다.


웹툰 시장은 문화 콘텐츠 중 하나에서 멈추지 않아요. 브랜드와 IP가 연동해 콜라보를 만들어내고, 광고가 만들어지고, 커뮤니케이션을 설계해 온 하나의 확장형 스토리 플랫폼입니다. 웹툰이 흔들리면 이를 기반으로 캠페인을 기획하던 브랜드들도 흔들리고, 브랜드 감성, 소비자 접점도 줄어들게 되겠죠.


성장은 멈출 수 있습니다. 시장의 사이클이라는 게 성장과 성숙기를 거쳐 쇠퇴하는 길을 가기 때문에 현재 단계가 쇠퇴를 의미하는 건 아니라고 봐요. 현재의 성숙기에서 플랫폼은 웹툰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하고, 웹툰을 소비하는 사용자들을 연결하는 커뮤니티로서 리브랜딩할 필요가 있습니다.



* 이 글의 원고는 아샤그룹 이은영 대표님이 제공해 주셨으며, 큐레터가 편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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