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 있는 집에 좋은 정수기 알려줘."
같은 질문을 AI에게 던졌을 때, 어떤 브랜드는 추천되고 어떤 브랜드는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아요.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요?
이번 <마케터를 위한 GEO 가이드>에서는 AI 검색 시대에 브랜딩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다뤘어요. 사람의 머릿속뿐 아니라 AI의 답변 속에서도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정신적 가용성'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함께 살펴보시면 흥미롭게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정신적 가용성 : 고객이 특정 구매 상황에 들어섰을 때 브랜드가 얼마나 쉽게 떠오르는지를 뜻함
브랜딩은 여전히 어려운 주제예요. 지난 20여 년간 마케팅의 무게중심이 디지털로 옮겨 가면서 광고는 실시간으로 성과를 측정하는 영역까지 발전했어요.
반면 브랜딩은 "무엇을, 얼마나 바꿨는가"를 좀처럼 증명하기 어려운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효과를 또렷하게 측정하지 못한다는 오랜 숙제를 풀지 못한 채, 우리는 AI 검색 시대로 넘어와 버렸어요.
감각의 브랜딩에서, 텍스트의 브랜딩으로
과거의 브랜딩은 상당 부분 감각의 싸움이었어요. 영상, 이미지, 컬러, 모델, 패키지, 매장 경험까지. 브랜드는 사람의 눈과 마음에 자극을 전했고, 그 감각으로 경쟁자와 자신을 구분했죠. 수십 년간 한국 기업이 TV 광고와 톱스타 모델, 매장 비주얼에 막대한 예산을 쏟은 것도 같은 이유였어요.
그런데 AI 시대에는 브랜드와 만나는 첫 접점이 달라져요. 이제 많은 사람은 검색 결과 페이지, 광고 영상에서 브랜드를 처음 만나지 않아요. AI에게 질문하고, AI가 정리해 준 몇 줄의 답변 안에서 브랜드를 만나게되죠.
문제는 그 답변의 형식이에요. 특히 정보 탐색형 질문에서 AI의 첫 답변은 대개 짧고 건조한 텍스트로 제시돼요. 멋진 영상도, 화려한 이미지도, 공들인 브랜드 무드도 그 안에서는 거의 사라져요. 수십억을 들인 광고 모델의 얼굴도, 매장의 분위기도 텍스트 몇 줄 안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는 겁니다. 감각으로 쌓아 올린 차별화가 설 무대 자체가 좁아지는 셈이에요.

실제로 저도 지난달 가정용 프린터를 살 때 AI가 가장 먼저 추천한 제품을 거의 고민 없이 구매했어요. AI가 내놓은 설명은 단 세 줄 정도였고, 요약하면 "가성비가 좋고 후기가 좋다"는 내용이었어요. 검색엔진으로 골랐다면 수십 개의 제품과 브랜드를 훑어봤을 테고, 그중 몇 개는 기억에 남았을 거예요.
하지만 AI에게 물어 산 지금, 제 머릿속에 남은 브랜드는 제가 구매한 단 하나뿐이었어요. 검색이 수십 개의 후보를 늘어놓는다면, AI는 사실상 하나의 답을 건네요. 그 하나가 되지 못한 브랜드는 존재 자체가 지워질 수도 있어요.
텍스트뿐인 AI 답변에서 브랜드가 이기는 길
이 변화를 가장 정확히 설명한 책이 바이런 샤프의 《브랜딩의 과학》이에요. 최근 독서모임에서 이 책을 함께 읽고 열띤 토론을 벌였어요.

마케터와 창업자, 대기업 브랜드 담당자가 한자리에 모여 "AI가 답을 대신 골라 주는 시대에 브랜딩은 무엇인가"를 두 시간 넘게 이야기 했었죠. 그 논의의 한가운데에 이 책의 핵심인 '정신적 가용성'이 있었어요.
압축된 텍스트뿐인 AI 답변에서 브랜드가 이기는 길은 결국 하나예요. 더 많은 상황에서, 더 자주 떠오르는 거예요. 답변 안에서 브랜드를 가르는 기준도 그렇게 바뀌어요. "얼마나 예쁘게 보이는가"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자주 떠오르는가"가 중요해져요.
정신적 가용성은 고객이 특정 구매 상황에 들어섰을 때 브랜드가 얼마나 쉽게 떠오르는지를 뜻해요. 바이런 샤프가 이끄는 호주 에런버그-바스 마케팅과학연구소가 오랜 실증 연구를 통해 다듬어 온 개념이에요. 샤프는 브랜드가 더 많은 사람의 머릿속에서 더 많은 상황과 연결될 때 성장한다고 말해요.
- 배달 음식을 시킬 때 어떤 앱이 떠오르나요?
- 급하게 송금할 때 어떤 서비스가 떠오르나요?
- 아이 있는 집에 정수기를 알아볼 때 어떤 브랜드가 떠오르나요?
- 그리고 AI 검색 최적화를 고민할 때 어떤 회사가 떠오르나요?
떠오르는 브랜드의 목록이 길고 또렷할수록 정신적 가용성이 높다는 뜻이에요.
이렇게 브랜드가 떠올라야 하는 구매·사용 상황을 '카테고리 진입점'이라고 불러요. 같은 초콜릿이라도 '나에게 주는 보상으로', '아이 간식으로', '고마운 사람에게 선물로' 떠오르는 순간이 모두 다른 진입점이에요.
정신적 가용성이 높은 브랜드는 이런 진입점을 더 많이, 더 넓게 점유해요. AI 시대의 브랜딩은 이 진입점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의 싸움이 될 가능성이 높아요.

이 대목이 AI 시대에 특히 중요해요. AI는 단순히 가장 유명한 브랜드만을 답으로 꺼내지 않아요. 주어진 상황과 얼마나 명확하게 연결돼 있는지, 그리고 그 연결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얼마나 충분한지를 함께 봐요.
AI는 '상황'을 묻고, '상황'으로 답해요
사용자가 AI에게 던지는 질문은 대부분 하나의 상황이에요.
- "가성비 좋은 노트북 추천해줘."
- "아이 있는 집에 좋은 정수기 알려줘."
- "중소기업에 맞는 보안 솔루션 뭐가 좋아?"
- "AI 검색 시대에 브랜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해?"
이 질문들은 특정 제품명이 아니라 상황을 담고 있어요. 사용자는 브랜드를 지목하지 않고, 자신이 처한 맥락을 설명하고 있죠.

그리고 AI는 그 상황에 어울리는 브랜드를 답해요. 이때 AI가 참고하는 것은 광고 노출량이 아니라, 그 상황과 브랜드를 연결해 둔 명확한 정보와 신뢰할 수 있는 근거예요. 공식 사이트와 리뷰, 외부 매체에 그 연결이 또렷하게 쌓여 있어야 AI도 안심하고 인용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브랜드가 할 일도 분명해져요. 하나의 멋진 슬로건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 브랜드가 떠올라야 할 상황을 가능한 한 많이 정의하고, 그 상황마다 고객이 실제로 던질 질문을 찾아내는 일이에요. "우리 제품이 필요한 순간은 언제인가"를 다섯 개가 아니라 오십 개로 적어 보는 작업에 가까워요.
그다음은 그 질문에 답하는 일이에요. AI가 읽고, 이해하고, 인용할 수 있는 형태로 콘텐츠와 근거, 신뢰 신호를 쌓아야 해요. 지난 글에서 다룬 GEO가 실제로 작동하는 지점도 바로 여기예요. 상황과 답을 콘텐츠로 명확히 적고, 기계가 읽기 좋은 구조로 정리하고, 외부 신호로 신뢰를 더하는 일이에요.
AI가 이해할 수 있는 브랜드가 되는 법
그렇다면 가장 현실적인 출발점은 웹사이트예요. AI 시대의 웹사이트는 더 이상 단순한 회사 소개서나 제품 카탈로그가 아니에요. AI가 브랜드를 이해하는 지식 구조가 되어야 해요.
AI는 웹사이트를 사람처럼 감상하지 않아요. 페이지를 읽고, 문장을 쪼개고, 의미를 연결한 뒤 사용자의 질문에 맞는 정보를 다시 꺼내 답변을 만들어요. 이때 중요한 것은 "이 브랜드가 어떤 상황, 어떤 문제, 어떤 근거와 연결돼 있는가"예요.
예를 들어 정수기 브랜드라면 "깨끗한 물을 제공합니다"라고 말하면 안 돼요. 아이 있는 집, 여름철 얼음 사용, 필터 위생, 렌탈료 비교, 사무실 탕비실처럼 구체적인 상황과 연결돼 있어야 해요. 그리고 각 상황마다 고객이 실제로 던질 질문, 그에 답하는 콘텐츠, 제품의 근거, 리뷰와 외부 신뢰 신호가 함께 정리돼 있어야 해요.

이 연결이 촘촘할수록 웹사이트는 하나의 브랜드 지식 그래프가 돼요. 브랜드와 제품, 제품과 고객 문제, 고객 문제와 구매 상황, 구매 상황과 질문, 질문과 답변, 답변과 근거가 서로 맞물리는 구조예요.
그래서 앞으로의 웹사이트 전략은 페이지를 많이 만드는 일이 아니에요. 브랜드가 선택돼야 할 상황을 정의하고, 그 상황마다 필요한 질문과 답을 구조적으로 잇는 일이에요.
회사 소개에는 "이 브랜드가 어떤 분야의 전문성을 갖췄는가"를 설명해야 해요. 그리고 제품 페이지에는 "어떤 상황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가"에 답해야 하죠. FAQ는 고객센터의 부속물이 아니라 AI가 가장 쉽게 인용할 수 있는 핵심 지식 단위예요. 언론 보도와 리뷰, 수상 이력은 자랑거리가 아니라 AI가 신뢰를 판단하는 외부 근거예요.
이 관점에서 GEO는 브랜드의 정신적 가용성을 AI가 읽을 수 있는 구조로 바꾸는 작업이에요. 사람의 머릿속에서 더 많은 상황에 떠오르는 브랜드가 돼야 하듯, AI의 답변 속에서도 더 많은 질문에 선택될 수 있는 브랜드가 되어야 해요.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상황에서, 더 쉽게 떠오르는 브랜드
앞으로 브랜드 경쟁은 검색 결과 상단을 차지하는 싸움에서, AI 답변 속 상황을 점유하는 싸움으로 옮겨 갈 거예요. 특정 상황에서 가장 먼저 호명되는 브랜드가 되는 일이 중요해 지는 거죠.
오래도록 브랜딩을 괴롭혀 온 측정의 문제도 여기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어요. 우리 브랜드가 어떤 상황에서 얼마나 자주 떠오르는지는 막연한 호감과 달리 충분히 측정할 수 있는 값이에요. 점유한 상황의 수와 폭이 곧 브랜딩의 성적표가 될 수 있어요.
AI 시대의 강한 브랜드는 두 개의 기억을 동시에 설계해야 해요. 하나는 사람의 머릿속 기억이고, 다른 하나는 AI가 읽는 디지털 기억이에요.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상황에서, 더 쉽게 떠오르는 브랜드. 그리고 더 많은 질문에서 더 신뢰할 수 있는 답으로 선택되는 브랜드. 앞으로의 브랜딩은 결국 이 두 기억을 함께 점유하는 싸움이 될 거예요.
※ 이 글의 원고는 에이넥트의 손승완 대표님이 제공해 주셨으며, 편집은 큐레터가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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