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뽑아봐" 라는 미션을 받았을 때 봐야 할 글

윤진호

by. 윤진호

26. 04. 27



최근 힙합씬을 보면 공연만큼이나 패션이 눈에 들어옵니다.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12>에서도 프로듀서 릴 모쉬핏과 래퍼 트레이비가 유독 귀여운 옷을 입는 게 기억에 남았죠.


귀여운 걸 입는 래퍼들. 그걸 보면 떠오르는 하나의 브랜드가 있습니다. 이 브랜드는 박재범, 키드밀리, 노페갓 같은 힙합씬 아티스트들이 찾는 브랜드입니다. 거친 이미지의 힙합씬 한가운데, 동글동글한 햄버거와 귀여운 꽃모양 옷들이 등장합니다. 이번에는 힙합씬 한복판에 귀여움이 들어온 이야기를 준비했어요.


지난 시리즈에서 귀여움이 돈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실제 사례로 살펴보았죠. 그리고 그 귀여움을 팔기 전에 먼저 필요한 것이 캐릭터의 정체성, 즉 WHO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다음은 무엇일까요?

👉 대표님이 캐릭터 귀엽게 뽑아보라 해서 기깔나게 만들었는데 잘 안 팔리네요


저는 여기에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장르입니다. 귀여운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해서 모두가 오래 살아남는 것은 아니에요. 귀여운 외형으로 잠깐 시선을 끌 수는 있어도, 사람들의 취향 속으로 깊게 들어가기는 어렵습니다. 이제 귀여움도 이런 질문이 필요합니다.


"이 귀여움은 어떤 장르인가?"





1. 모두를 위한 귀여움은 아무도 붙잡지 못합니다


귀여움을 만들 때 가장 자주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남녀노소 다 좋아할 수 있게요."

"누가 봐도 귀엽게요."


듣기에는 가장 안전한 말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말은 동시에 아무에게도 진하게 남지 않아도 괜찮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귀여움이 귀하던 시절에는 이런 방식도 통했어요. 귀여운 요소에 사람들은 쉽게 반응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차별화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귀여운 것들이 너무 많아졌어요. 캐릭터도 많고, 굿즈도 많고, 콜라보도 많습니다.




이런 시대에 모두를 위한 귀여움은 오히려 힘을 잃기 쉽습니다. 무난하지만 강하게 기억되지는 않습니다. 반대로 특정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에 정확히 닿는 귀여움은 훨씬 더 깊게 파고듭니다.


그래서 이제 귀여움을 만든다는 것은 단순히 외형만을 채우는 일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의 취향 안으로 들어갈 것인지, 어떤 문화와 연결될 것인지, 어떤 라이프스타일 안에서 소비될 것인지를 정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일상인지, 음악인지, 패션인지, 게임인지 그 영역이 명확할수록 귀여움은 더 강해집니다.


귀여움은 가볍게 시작할 수 있지만, 오래 가려면 반드시 장르를 가져야 합니다.



2. 반디더핑크는 귀여움을 하나의 장르로 만들었습니다


이 원칙을 가장 잘 보여주는 브랜드가 있습니다. 바로 반디더핑크(VANDY THE PINK)입니다.


사진 : 반디더핑크(VANDYTHEPINK)


처음 반디더핑크를 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패션 브랜드인데 왜 이렇게 귀엽지? 스트리트 브랜드인데 왜 햄버거가 나오지? 하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브랜드는 단순히 귀여운 캐릭터를 얹은 것이 아닙니다. 귀여움을 하나의 스트리트 장르로 번역한 브랜드입니다.


2023년 미국 롱비치에서 열린 세계 최대 규모의 스트리트 패션 컨퍼런스, 콤플렉스콘에서도 반디더핑크는 독특한 존재감을 보여줍니다. 수많은 브랜드 사이에서 햄버거가 그려진 티셔츠와 굿즈가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힙합과 스트리트 문화의 현장에 이렇게 동글동글하고 유머러스한 귀여움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하나의 메시지처럼 느껴집니다.


반디더핑크는 처음부터 전형적인 캐릭터 브랜드를 지향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햄버거와 감자튀김, 일본 애니메이션, 90년대 하라주쿠 감성, 미국 스트리트 문화, 힙합의 자유로운 태도를 뒤섞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귀여움을 입혀요.


그 결과 이 브랜드는 '귀여운 패션'이 아니라 '귀여운 스트리트 웨어'라는 자신만의 장르를 만들게 됩니다.



3. 왜 하필 햄버거였을까요?


반디더핑크의 시그니처는 귀여운 햄버거입니다. 패션 브랜드의 상징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소재로 보이기도 하죠. 하지만 바로 그 햄버거가 브랜드의 정체성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햄버거는 저렴하고, 대중적이고, 일상적입니다. 동시에 미국을 상징하는 음식이기도 하죠. 반디더핑크를 이끄는 손정훈 디렉터에게 햄버거는 힘든 시절 위로가 됐던 음식이었어요. 동시에 자신의 서사를 담아낼 수 있는 상징이기도 했고요.


사진 : @vandythepink


즉, 이 햄버거는 그냥 귀여운 그림이 아닙니다. 브랜드의 배경과 취향, 문화적 레퍼런스, 개인적 감정이 모두 섞인 상징이에요. 이런 상징은 브랜드를 강하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단순히 캐릭터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캐릭터가 속한 세계를 함께 소비하게 만들기 때문이에요.


반디더핑크는 이 햄버거를 통해 말합니다. 우리의 귀여움은 스트리트와 힙합, 오타쿠 감성과 하라주쿠 무드가 섞인 귀여움이라고. 한국과 미국, 일본의 스트리트 문화와 감성을 모두 지나온 손정훈 디렉터의 배경이 이 브랜드의 조합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렇게 브랜드 창업가의 서사가 담긴 고유의 아이콘이 탄생할 수 있었죠.



4. 귀여움이 장르가 되면 팬도 달라집니다


반디더핑크의 초반 대표작은 의류가 아니라 햄버거 인형이었습니다. 300개 한정으로 내놓은 이 인형은 3분 만에 완판됩니다. 그중 하나는 블랙핑크 리사의 집에서도 등장하며 더 큰 화제를 모았죠.


왜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귀여움에 장르와 희소성이 함께 붙었기 때문입니다. 반디더핑크의 팬들은 단순히 인형을 산 게 아닙니다. 그들은 반디더핑크가 가진 취향의 세계에 들어간 거예요. 그 귀여운 햄버거를 사는 순간, 그들은 패션과 음악, 문화적 감각을 함께 소비하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변화가 생깁니다. 귀여움이 단순한 시각적 매력을 넘어 '소속되고 싶은 취향'이 된다는 점입니다.


함께하고 싶은 취향에서 귀여움은 오래 남습니다. 이후로도 이 브랜드는 포켓몬, 도라에몽 등 키치한 캐릭터 콜라보를 이어가면서도 스트리트 컬처 씬에서 꾸준히 인기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5. 힙합씬은 왜 반디더핑크를 입었을까요?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왜 래퍼들은 자꾸 귀여운 걸 입는 걸까요?


힙합씬이 갑자기 순해져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에 가깝습니다. 힙합은 원래부터 자기 취향과 태도를 강하게 드러내는 문화였습니다. 남들과 다른 것, 자기만의 스타일, 자기만의 세계관이 중요하죠. 그런 문화 안에서 반디더핑크의 귀여움은 더 선명한 취향의 표현이 됩니다.


사진 : @vandythepink


귀여움이 순하고 무해하기만 한 것뿐 아니라, 취향을 더 뚜렷하게 드러내는 장치가 되는 거죠. 반디더핑크는 힙합과 스트리트 문화, 일본 애니 감성, 유머와 캐릭터성을 섞어 누군가에게는 아주 명확하게 파고드는 장르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반디더핑크의 귀여움은 모두가 좋아해야 하는 귀여움이 아니라 어느 씬의 취향을 가진 누군가를 확실한 팬으로 만드는 귀여움이 됩니다.



6. 귀여움은 누군가의 라이프스타일과 맞닿아야 합니다


반디더핑크가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귀여움은 그 자체만으로는 오래 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패션, 음악, 공간, 문화, 세대 감각 같은 라이프스타일과 만날 때 훨씬 강해져요. 이건 반디더핑크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디즈니나 포켓몬 같은 큰 IP들 역시 결국 라이프스타일 안으로 스며드는 방식을 고민합니다.


그래서 '장르'가 필요합니다. 장르는 그 귀여움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취향 지도 같은 겁니다. 이 캐릭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음악을 듣고, 어떤 공간을 좋아하는지 보여주는 좌표예요. 장르가 정해지면 그 귀여움이 사람들의 실제 삶과 연결됩니다. 이 지점에서 귀여움은 단순한 외형을 넘어 하나의 '문화 코드'가 됩니다.



7. 그래서 귀여움에 장르가 필요합니다


정리해보겠습니다. 귀여움은 누구나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래 기억되는 귀여움은 다릅니다. 특정한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에 정확히 닿을 때, 귀여움은 더 강한 힘을 가지게 됩니다.


반디더핑크는 이를 잘 보여줍니다. 귀여움에 스트리트 문화를 더했고, 캐릭터에 패션과 음악의 결을 섞었으며, 자신의 정체성과 취향을 하나의 브랜드 장르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반디더핑크의 햄버거는 단순한 귀여운 캐릭터가 아니라 어떤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제 귀여움을 설계할 때는 이런 질문이 필요합니다.


  • 이 캐릭터는 누구의 취향에 닿는가?
  • 이 귀여움은 어떤 문화와 연결되는가?
  • 이 캐릭터는 어떤 장르로 기억될 것인가?


스타일을 정하고, 장르까지 정해졌다면 이제 다음 질문이 남습니다.


그것을 어디에서, 어떻게 만나게 할 것인가?




다음 글에서는 귀여운 경험을 만드는 방법으로 이어가 보겠습니다.


(NEXT) 귀여움을 파는 무기들 5화 : 귀여움은 무엇으로 완성될까?


* 이 글의 원고는 윤진호(마케터초인)이 작성하였으며, 큐레터가 편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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